인간은 하나님을 끝없이 부정하고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은혜까지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증표입니다. 예수께선 온 인류의 구속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 자체가 용서·사랑의 본체입니다. 그분의 희생, 용서와 사랑이 없이는 한 사람도 하나님의 앞에 떳떳이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이 용서와 사랑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용서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른다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 형제를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하냐는 베드로의 물음에 주님께선 말씀하십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끝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내면의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 용서해 보십시오. 세상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자녀 아내 남편 친구 이웃 동료를 용서해 보십시오. 용서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용서를 품고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평안으로 인도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공동체들이 파괴되는 이유는 용서를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줄 모르면 비극은 반복됩니다. 세계 곳곳에 벌어지고 있는 살생의 모든 근원도 용서를 잊어버린 결과가 아닐까요.
민족과 민족이, 국가와 국가가 서로 화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대가만 강요한다면 용서와 화해,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자백하면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죄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용서가 없다면 이만한 비극이 없습니다. 수년간 적지 않은 교회 공동체들이 깨어졌습니다. 용서와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본을 상실한 겁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일일이 징벌하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우리부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