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일제 강점기에 우보 민태원 님이 쓴 <청춘 예찬>이란 글을 종종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청춘 예찬>은 1930년대 젊은이들의 피끓는 정열, 원대한 이상, 건강한 육체를 들어 청춘을 찬미하고 격려한 수필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한 오늘의 청춘들에게, 이천 년 전 바울은 <싱글 예찬>을 한다. 물론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바울은 7장에서 결혼과 성을 주제로 장문의 논지를 펼치고 있으나, 요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사람이 싱글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26하절). 바울은 남성이었으나 독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조금 있었기에, 처녀[=미혼 싱글]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25절). 비록 그것은 주의 명령은 아니지만, 주의 자비하심을 따라 충성스럽게 개진하는 소견이다. 바울이 7장에서 일관되게 독신을 선호하는 근거 중 하나는 임박한 환난이다(26상, 29상절).
바울은 이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한다. 결혼 상태라면 이혼하지 말고, 돌싱 상태라면 재혼하지 말아야 한다(27절). 결혼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환난이 임박했기에 기혼자들의 육신에 고난이 있을 것이다(28상절).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지금 이러한 권면을 하는 것이다(28하절).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우므로, 이 후부터 기혼자들은 미혼자처럼 생활하고,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처럼 행동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처럼 생활하고,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처럼 행동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그것을 다 쓰지 못하는 자처럼 생활해야 한다(29-31상절). 왜냐하면 이 세상의 원형은 다 지나가기 때문이다(31하절).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염려 없기를 원한다(32상절). 미혼자들은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주의 일을 염려하는 반면에, 기혼자들은 어찌하여야 배우자를 기쁘게 할까 세상 일을 염려하여 마음이 갈라진다(32하-34상절). 미혼 싱글과 돌싱은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여 주의 일을 염려하는 반면에, 기혼자들은 어찌하여야 배우자를 기쁘게 할까 세상 일을 염려한다(34중-하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덫을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다(35상절). 다시 말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35하절).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혼[=미혼, 졸혼]을 선호한다. 하지만 바울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그렇게 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싱글 예찬을 하지만 종말론적 근거에서 그렇게 한다. 본문에서 나는 몇 가지 적용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시한부 종말론자도 아니고, 일루미나티 같은 음모론자는 더더구나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말 인류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장점은 그들이 끝을 알기에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정말 멀지 않았다. 그러니 깨어 기도함으로 그 날을 준비하자.
둘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결혼 질서나 가정 생활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분명 독신을 선호하고 있지만, 그의 논지 중 하나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즉 기혼자는 기혼 상태를 유지하고, 미혼자는 미혼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정욕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다만 종말에 대한 언급만 있다. 대신 단서가 붙는다. 환난이 임박했기에, 결혼 생활에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가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도 맥락은 다르지만, 요점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요즘 우리의 공통된 기도제목이 있다면 하루 속히 코로나 시국이 끝나는 것일 것이다. 확진자가 더 늘어서도 안 되겠지만, 사망자는 더더구나 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좀 더 넓히고,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나와 우리나라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사회적 약자와 다른 나라, 온 지구촌이 함께 살아갈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단지 예배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꽃놀이, 부활절, 총선이라는 지뢰밭을 건너 이제 유초중고교 개학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보건당국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 것처럼, 코로나로 빼앗긴 일상을 회복할 그날을 고대하며, 주어진 하루를 선물처럼 요긴하게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구한다.